❤ 악처(惡妻) = 약처 (藥妻)

Nevertheless we need a nagger between ‘The-ending’ and ‘The end’ Good medicine tastes bitter.

강직하고 의로운 포청천 처럼 오래 동안 그런 기대를 걸어 왔던 원로 정치인의 최근 행보와 이임을 보면서 그 동안 느낀 심란함을 정리해 본다.

죽기 전 마지막 5년이 인생 끝 날까지 살아 온 80년 전체를 종합 평가하는 기간이니, 마지막 5년을 ‘잘 살자’고 말해 온 나는, 그런 마감 기간의 일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끝내기 기간 동안 어떤 사람들이 그 사람 곁에 있어 주었느냐의 사람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듯이 악처(惡妻)-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의 약처(藥妻)였을 거라는 생각 조차 든다.

악처(惡妻)같은 사람 하나 옆에 두지 못한 듯 32년의 이력이 아침 해 앞에서 순간 사라져 버리는 원로 정치인에게서 우리는 배운다. 충언(忠言)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라.

싫은 소리 하는 부인, 남편을, 쓴소리를 사랑하자.

영화 ‘기생충’

반지하에 사는 자가용 운전사 ‘기택’이와 그 가족들의 옷에서 나는 가난한 냄새 (사람)을 조롱한 부자 주인을 살해하면서 ‘냄새 난다고 사람까지 무시하는’ 우리들의 가슴을 깊숙이 찔러 버린다. 이미 국제적 상을 받은 이 영화가 로컬(?) 아카데미 상도 충분히 받을 만하다. 이곳 천사의 도시에서 피어 오르는 가난한 (노숙자) 냄새 역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의 사회적 문제라고 대변하면서…

50년 전 쯤 국민학교 (초등학교) 졸업식 식장에 입장하러 교실에서 식장 강당으로 졸업생 모두들이 이동 하기 전에 김 아무개 담임 선생님은 나와 오아무개 보고 남으라고 하고서는 서로 윗 옷을 바꿔 입으라고 하셨다. 내가 우등생으로 뽑혀서 지역 유명 인사들과 천 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상을 받게 되는 데 내 옷이 너무 가난한 누더기 같았었나 보다.

무직에 학교 한번 찾아 오지 않은 학부모의 자식이었으니 우등상을 다른 학생에게 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을 담임 선생님은 양심껏 나를 우등생으로 지명했던 것이다. 옷을 바꿔 입히는 ‘비범한 결단’이 지금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런 ‘상록수’ 선생님 덕에 나는 내내 가난했지만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가난을 이겨 나가는 자긍심을 상으로 주셨던거다. 그날 함께 상을 받은 친구는 아버지가 경찰이셨고 그 친구는 내 상이 더 크다고 바꾸자고 했었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들이 가난을 극복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인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대신 가난했기에 더욱 진지하게 살아 올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가난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그냥 다른 사람과의 비교이려이니 무시하고, 나이 70 넘어서 까지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할 일을 정해 나아 가십시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애정을 더 쏟을 만하면 지금 하는 이 일이 ‘그 일’이어도 좋습니다.

Be Soulful but Not Weak

둘째 사위 딸 아이들과 제법 먼 산책로를 두 시간 넘게 포기하지 않고 걸어 오면서…

  • 큰 손주 한율이가 할머니 등에 잠시 업힌 동생 두율에게 하는 말: ‘할머니를 아껴야 해. 내려 와’ 그 말을 듣고 얼른 둘째가 내렸다.
  • 그래도 힘들어 해서 큰 놈 작은 놈을 번갈아 안고 약속한 걸음을 세는 데 둘 다 그 숫자가 다 되기 전에 내려 달란다. ‘할아버지도 아껴야 해’

5살 3살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영혼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이런 영혼들이 너무 여려서 상처 받지 않고, 튼실하게 자라서 더불어 함께 더 기쁘게 나누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단조로운 산책 동안 여러 차례 ‘Never give up to the finish line’ 이라고 말해 준 것 처럼,

까진 무릎 상처도 곧 낫듯이 마음에 상처가 나더라도 꼭 나을 거라고 그리고 더 굳게 될 거라고 말해 볼까

책을 많이 읽도록 만날 때 마다 나도 책을 들고 다니며 보일까

만나는 동안에는 전화를 만지지 말까

감동과 함께 고민도 생긴 토요일 산책이었다

집념이란

Milton Chortkoff (1929 ~ 2017)

Owner of Milt and Edie’s Dry Cleaners, Burbank, CA

12/28/2017에 88세로 세상을 마감하다. 70년 이상을 세탁업에 종사했다하니 일찍부터 어려운 시기도 여러 번 겪었을 터…끝까지 오늘 날 최고의 세탁소로 키워 내면서, 집념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준 훌륭한 사람이다. 편히 잠드시고 천국에 드시길…

끝사랑

어린 시절 첫사랑-짝사랑은 나를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닌 데, 찾아가서는 말도 걸지 못하고 멀치감치 애만  태우다 돌아서 오는 그런 거였지.

그런 예방 주사 덕에 큰 병 없이 끝사랑까지 온 거지.

‘그•날’이 오면 역시 찾아가야 하는 ‘끝사랑’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뭐하다가 오시었나?’ 물으면

다시 되돌아 서지도 못하는 데 할 말이 없다면?